1.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니다.
딱히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도 아니다.
그냥 보수파의 3가지 논리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및 분석인걸.
분량도 많지 않다.


그런데 굉장히 읽기 힘들고 피곤하다.

저자는 원래 글을 읽기 힘들게 쓰는 학자인 것 같고
역자는 역자대로 읽기 힘들든 말든 그냥 그대로 한국어로만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툭 하면 서너줄이 넘는 문장이  피동태로 연결되는데
문장호응이 어디로 연결되는 것인지;;;
어휘를 좀 바꿔야 자연스럽지 않나? 싶은 단어도 워낙 많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미간에 인상을 쓰며 읽게 된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어려운 내용이라 그러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이
훨씬 더 많은 논의와 고찰을 담고 있었고
10배는 더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읽기는 1000배 쉬웠다.

종종
"뭐? 방금 뭐라고 한겨?" 라고 중얼거리며 읽게 되는 책.

모름지기
어려운 말을 쉽게 하는 것이 천재고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이 바보다.


쉬운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쓰는 사람이
세계적인 석학이라니
나는 사실 좀 믿기지가 않는다. 과장광고 아닌가...



2.
이 책에 소개된 3가지 명제 중에서

[역효과 명제] 라는 것이 있다.

개혁을 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복지정책을 해봤자 오히려 더 궁핍해진다 라는 식의 주장.


이것을 읽었을 때,

이런 뻑킹! 이러니까 보수파가 이길 수밖에 없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이 역설은 스토리적으로 워낙 우수하다.

(노력할 수록 오히려 일이 틀어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스토리인가!
 오디푸스 이야기도 정확히 그거고... 너무도 많은 스토리에 역설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는 장치로 효과적으로 쓰인다)

정치경제적으로 접근하면 분명이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역효과 명제를 스토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도저히 (스토리작가의 본능?때문에) 반박을 못하겠다;;;;;


게다가

다른 두 가지 명제는 진보 버젼이 존재하지만

역효과 명제와 짝을 이룰 수 있는 논리는 없다.


보수가 이길 수 있도록 짜여진 세상의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감이 들었음.



3.
아울러
제목이 그럴싸 해서
마치 보수가 세상을 속이고 지배한 비결을 분석하고
그것을 깰 수 있는 대응논리가 적힌 책이 아닐까 하고
잘못된 기대를 하기 쉬운데

딱히 보수의 필승패턴을 분석하고 이길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단지 보수가 항상 주장하는 개혁에 대한 반대의견 3패턴을 분석했을 뿐.
게다가 대부분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들이라... 딱히 필승패턴도 아니다.

게다가 저자는 말미에
진보도 그에 대응되는 억지 주장이 있다면서 소개하더니

'서로 자기 주장만 하지 말고 타협할 줄 알아야 되염' 하고 좋게 좋게 끝맺음을 한다. (문장을 알기 쉽게 고쳐보았음)

아아... 내가 원했던 건...그런 게... 아냐!!! orz


뭐, 설령 필승패턴이 있다한들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우리도 박그네의 필승패턴을 알고 있지 않은가?

불리한 일이 생긴다-> 생깐다 침묵

나쁜 짓 했던 거 발각됨 -> "정치 공세 그만해라. 그것보단 민생을 돌봐라"고 훈계.

좋은 일 ->아무 것도 안 하고 틀어박혀 있다가 마무리 시점에 나타나 밥숫가락만 놓는다.


모두들 알고 있다.
 
하지만 알면 뭐해. 이길 수가 없는데....


4.

역자가 프레시안 관계자라고 적혀 있음.

그러고 보니 프레시안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서평이 실릴 때가 종종 있는데
아마 그거 쓴 사람이었나보다.

이 역자 이름 기억해두고 절대 번역서 안 사야지...

Posted by Antikim
,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피규어스케이팅 경기가 끝나자
뉴스가 온통 [김연아 금메달 도둑 맞았다] 기사로 도배된 상태군요.
외국 언론에서도 편파판정이라고 했다느니, 금메달 되찾기 서명운동을 하느니...

저도 김연아 선수의 연기가 끝나는 순간
이 정도면 금메달 아닐까? 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놀라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홈경기 텃세가 참 심하다는 생각도 들구요.

하지만 차마 러시아를 비난할 수가 없었습니다.
88올림픽, 2002월드컵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럴 자격이 없잖아요.

표창원님이 제가 하고픈 말 거의 다 해주셨으니 링크를 붙입니다.

->표창원 “김연아 편파판정 지나친 국가주의 떨쳐야”

근데 이런 말 하면
"너는 뭐가 그리 잘났냐" "편파 판정 아니란 말이냐!" "이 나쁜놈아! 연아가 불쌍하지도 않냐?"
등등
애국자 여러분들이 펄쩍 뛰고 흥분하고 날뛰시는데...
참으로 답답합니다.

누가 편파 판정 아니랬나.

[한국도 편파판정 열심히 했으니 김연아 금메달 빼앗겼다고 화낼 자격이 없다]
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나요.

연기도 완벽했고 그런 결과를 받고도
끝까지 의연한 자세를 유지한 김연아 선수야말로
실력과 인격에서 최고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그것을 온 세계가 다 봤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녀가 최고라는 걸 아는데 메달 색깔이 무슨 대수냐 싶어요.
심지어 금메달을 딴 아델리나 선수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김연아 선수 인터뷰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결례를 범했죠.
실력뿐만이 아니라 인격에서도 한참 아래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가 화낼 필요 없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금메달을 못 땄을 지언정
최고라는 것을 증명했고, 명예를 잃은 적도 없습니다.
불쌍하지도 않습니다. 감히 누가 누굴 동정합니까.

오히려 러시아를 욕하고 감점시킨 심판을 색출하고
금메달 내놓으라고 항의하는 짓이야말로
그녀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항의하고 러시아 욕한다고
금메달도 돌아오고 심판들도 사과할까요?
김연아 선수가 기뻐할까요?

만약 김연아 선수가
부끄럽고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국내의 이런 격양된 반응들이 아닐까 합니다.

Posted by Anti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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